요즘 이런저런 이야기를 쓰다 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특히20년 전처음으로 갔던 낯선 유럽, 그곳에서 보고 경험했던 10년의 기억과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한 번도 글로 정리해본 적 없었던 이야기였는데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려니 어떤 것은 막연한 기억이기도 하고, 또 문득문득 잊고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함부르크에서의 유학 생활
유학을 떠나기까지
대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올라온 서울에서의 직장 생활은 참 퍽퍽했다. 졸업 후 근 10년을 인테리어 공방과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하다가 프리랜서 일러스트로 활동했다. 프리랜서는 불안정한 직업이었던지라 일이 들어오면 모두 받아서 했다. 벌지 않으면 굶을 것 같았고 앞으로 달리지 않으면 도태될 것만 같은 서울살이였다. 그당시 인기드라마였던 ‘서울의 달’. 주제곡을 노래방에 가면 꼭 불렀던 기억도 난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 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있지만웃고 있지만……” 이런가사의 노래였고 도시로 상경해 적응해가는 내마음 같았다. 일에 지치다보니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그래서 호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엄마의 사촌인 이모가 처음으로 우리 집을 방문했다. 친 자매는 아니었지만 어린시절 같은 마을에 살며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이모는40년 전독일로 간 파독 간호사로 당시 함부르크 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호주 가지 말고 독일로 와. 거긴 학비도 무료야.” 이 한마디가 내 귀에 박혔다. 미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형편이 안 되어 꿈을 포기했었다. 그런데 학비가 없는 곳으로 공부하러 와서 이모 집에 머무르며 적응해가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흐릿해지다 못해 삭아버린 줄 알았던 유학에 대한 꿈이 되살아나 신기하게도 내 가슴을 다시 두근거리게 했다. 어학 초급은 떼고 가야지 하는 마음에 독일어 어학학원에 등록했지만 맡은 일을 마무리하느라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다. 그래도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가서 하지뭐~ 하는 심정으로 서둘러 떠났다. 처음으로 나가보는 외국이었고 30이 넘은 나이에 구체적인 준비 없이 떠나는 유학길이였던지라, 친구들은 내가 맨땅에 헤딩하러 간다며 대책 없다고도 했고 용기 있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뭔들 어떠랴. 당시 나는 공부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두근거렸는데.
비행기를 타고 12시간, 기차를 타고 4시간
독일로 떠난 것이 20년 전이다. 비행기를 타고 12시간 정도 날아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 내렸다.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빠른 기차 ICE를 타고 4시간 정도를 달려 독일 북부 도시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ICE는 한국의 kTX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프랑크 푸르트에서는 괜찮았던 날씨가 북쪽 함부르크로 갈수록 흐리고 비가 왔다. 2월 초였으니 아직 겨울이였고 날씨가 춥고 눅눅한 것이 들은바대로 전형적인 독일의 겨울 날씨였다. 처음 그런 우울한 날씨를 접하다보니 당시 내 기분도 가라앉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어학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스산한 거리에서, 특히 겨울비가 오는 날이면 김이 모락모락 나고 따뜻한 오뎅이 있는 포장마차가 얼마나 그리웠던지. 독일엔 우리나라처럼 겨울에 먹을만한 따뜻한 음식도 없지만, 포장마차 처럼 길에서 먹거리를 파는 곳은 더더욱 없었다. 음식 가격이 15유로나 되는 레스토랑은 있었지만...그해 겨울엔 포장마차 생각이 많이 났고 오뎅이며 우동, 라면,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같은 따뜻한 한국음식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가족보다도 친구보다도 더…..참고로 말하자면, 그당시에도 인터넷으로 화상통화가 가능해서 사람이 많이 그립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둡고 춥기만 했던 함부르크는 사실 녹음이 푸른 도시였다.
서서히 봄이 오고 여름이 오자 함부르크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함부르크는 서울과 비슷한 면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비해 인구는 서울의 7분의 1밖에 안되어 어디를 가도 한가로워 보였다. 오후 4시면 해가 떨어지는 겨울엔 시내에서 조차도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았다. 해가 아주 긴 여름이 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많은 사람들이 공원 곳곳에서 일광욕을 즐기거나 그릴파티를 하거나 산책을 하고 달리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로 도시가 활기로 가득했다. 햇살 좋은 날은 해변가가 아닌데도 해변가를 방불케 할 만큼 과감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 특히 여인들을 모든 공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여름에도 서울처럼 복잡한 곳은 없었다. 축제가 벌어진 곳을 제외하고는.
이곳엔 우리나라와 다르게 술집이 많지 않다. 삼삼오오 모이면 원하는 술이며 먹거리를 사서 공원에서 먹으며 놀면 되니까.
내가 살았던 집 옆에도 자그마한 공원이 있었는데 그곳엔 대리석으로 만든 탁구대도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맥주와 먹을 것을 사서 그곳에 가 탁구를 치며 놀았다. 검색을 해보니 함부르크가 120개가 넘는 공원이 있는 독일 최고의 녹색 도시라고 한다. 그리고 도시 전 면적의 28%가 자연보호 지역이라고 한다. 숲과 호수가 많은 곳. 작은 강줄기를 잇고있는 큰 엘베강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고 강 주변으로 무성한 나무는 도시의 오래된 건물과 어우러져 운치가 있는 숲의 도시 함부르크. 공원이 많아도 산이 없어 산이 종종 그립기는 했다. 그래서 지금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마을에서 살고있나보다.
함부르크에는 알스터호수가 있다.
함부르크의 가장 대표적인 호수가 알스터(alter)호수이다. 그 많은 호수 중에 Alter 호수가 대표적인 이유는 함부르크 중앙 시내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다리넘어 그 옆으로 이어진 제2알스터까지 포함하면 제일 크기 때문일 거다. 알스터호수 주변으로는 함부르크시청, 미술관, 백화점, 대학, 은행, 등 모든 중요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평소엔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고 종종 특별한 행사도 열리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한국 포장마차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천막들이 줄지어 서 있고 각종 먹거리며 상품들을 팔았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렇게 활기찬 여름이 가고 길고 지루한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처음에는 이들도 우울해서 나처럼 방에 콕 박혀 사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친구가 생기고 이곳에 적응하며 알았다. 이들이 눅눅한 독일의 겨울을 어떻게 지내는지…. 물론 독일 학생들 얘기다.
"시험 끝나서 파티할 거야 올래?" 또는 "프랑크프푸르트에서 사촌이 놀러 와서 파티해. 시간 됨 와!" 라고 초대받거나 “누구 집에 생일 파티 갈래? 아무 친구나 데려와도 된댔어." 이렇게 얼굴도 모르는 애 생일 파티에 가면, 주인장 스타일의 음악에 음식이 있고 낯선 사람들이 수다를 떨고 춤추며 놀고 있었다. 어떤 파티든 이곳에서는 누구나 음식이든 음료 등을 필수로 알아서 들고 파티에 간다. 주인장이 준비한 것과 가져간 음식이 모이면 푸짐한 파티장이 되는 것이다. 나는 주로 한인 슈퍼에서 산 만두를 팬에 구워갔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음식이었다. 성의를 보일 때는 김밥을 만들어 갔는데 한국의 만두와 김밥은 인기가 매우 좋았다. 그렇게 알바하고 공부하며 놀다 보면 다시 여름이 된다. 그럼 도시가 햇살로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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