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하고 정겨운 한옥 툇마루에 앉아 비 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빗소리가 왜 지금의 우리 집과 다르게 느껴질까 생각한다. 낮은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마당에 튕겨 올라오는 물방울. 작은 물 웅덩이. 툇마루에 앉아 있자니 어린 날이 생각났다. 한옥에서 산 적도 없는데 왜 이곳에서 나는 나의 어린 날을 떠올리는 것일까? 어린 날 우리집도 낮은 처마에 툇마루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 툇마루에 앉아 숙제도 하고 매미 소리도 듣고 빗소리도 듣고 제사가 있는 날이면 바쁜 엄마를 도와 부침개도 부치고… 방안에서 보다 툇마루에서 무언가를 한 기억만 있다.
강진 가우도에서 맞은 해맞이

생각지도 못한 만두빚기의 즐거움.
선생님은 내일 팽목항에 오는 손님에게 만둣국을 끓여준다고 하셨다. 직접 만든 정성이 깃든 만둣국이길 바라셔 만두 속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 네 명이 만두를 만들게 되었다. 이런 재미있는 체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함께 간 네명이 옹기종기 모여 두런두런 수다를 떨며 만두를 만드는데……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어린 날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만들던 때가 생각났다. 예전에는 가족들이 다 함께 음식을 만드는 문화가 있었는데, 우리 집 송편 만들기는 언제쯤 사라진 것일까? 아버님이 떠나시고 부터 였나? 정확지가 않다. 이렇게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버려 기억조차 안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나도 진행한 적이 있는 꿈 다락 토요문화 학교의 프로그램 중에는 아이들끼리 또는 가족과 함께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많았다. 3-4개월 동안 토요일마다 잊혀져가는 옛 문화체험을 다양하게 한다거나, 가족이 함께 텃밭을 가꾸며 무언가를 꾸준히 키운다거나, 함께 먼길을 걸으며 평소에 하지 못한 이야기 시간을 갖는 다거나… … 가족끼리 그냥 가면 되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프로그램을 이끄는 사람은 선한 목적을 가지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요소들을 개발하고 진행한다. 특히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은 아이와의 소통을 원하는 부모가 신청하여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된다. 만두 만들기처럼 뭔가 음식을 함께 만드는 프로그램이 생겨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집에 돌아가면 친구 또는 가족과 함께 만두 만들기를 해 보아야겠다.

술 파티! 이야기 파티!
늦은 시간까지 술 파티, 이야기 파티가 있었다. 우리 네명과 동화작가 두 분과 영화감독님, 시나리오 연출자 한 분. 이미 한 분야에 전문가로 자리 잡은 분들이어서인지 우리가 들어야 하는 도움되는 말들이 많았다. 현장에서의 에피소드, 등단 후의 이야기, 진행되는 일과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 누구는 와인을 마시며, 누구는 소주를 마시며, 누구는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새로 만난 분들과 하는 이야기는 늘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한다. 내가 몰랐던 세계의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과 놀라움 그리고 깨달음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가 한 이야기가 다 생각나지는 않지만…… 무슨 일이든 끝까지 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그 힘의 근원은 체력이라는 말 만큼은 선명하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비슷한 것 같다. 늘 하고 듣는 말인데…. 또 새롭게 들린다. 왜일까? 각자 그 구체적인 이유가 다르기 때문 아닐까? 누구는 오래 앉아 쓸 수 있는 힘이 필요해서, 누구는 오래 움직일 수 있는 체력을 위해, 누구는 오래 말할 수 있는 힘을 위해… ...각자 원하는 에너지를 가지기 위해서 체력은 필수 요건인 것이다. 나는 오늘 접어둔 운동기구를 꺼내두었다.

가우도에서 본 카페 ‘민들레는 민들레’
자정 즈음인가? 비는 그쳤지만 구름이 가득했고 달이 잠깐 구름 밖으로 나왔다 들어갔다. 아침에 가우도로 해맞이를 하러 가기로 했기에 전날의 피곤함을 무릅쓰고 6.30분 기상. 해는 7.40분쯤 뜬다 하니 서둘러 가우도로 향했다. 선생님이 추천한 장소, 해돚이가 멋있다는 곳,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카페가 있는 곳으로…… 강진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소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연유에선지 마을 이름이 소와 연관된 곳이 많다고 했다. ‘가우도’라는 이름도 소의 멍에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우린 아직 문도 열지 않은 ‘민들레는 민들레 카페’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어디쯤에서 해가 떠오를까 하며 주변을 걸었다. 맞은 편으로 갯벌과 바다, 그리고 가우도가 보였고 하늘엔 구름만이 가득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곳 '민들레는 민들레 카페'는 동화 ‘민들레는 민들레 ‘그림책 작가 오현경님이 직접 운영하는 카페라 한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이, 풍경이 아름답기에 이곳에 카페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기회가 온다면 꼭 카페안에서 밖을 보며 차를 마시고 싶다. '민들레는 민들레'책을 검색해보았다. 김장성 작가님이 글을 쓰신 아름다운 논픽션 그림책이다. 정겨운 그림과 어우러진 글귀는 대략 이러했다.
민들레는 민들레
싹이 터도 민들레, 잎이 나도 민들레
꽃줄기가 쏘옥 올라봐도 민들레는 민들레
여기서도 민들레, 저기서도 민들레, 이런 곳에서도 민들레는 민들레
혼자여도 민들레, 둘이어도 민들레, 들판 가득 피어나도 민들레는 민들레
꽃이 져도 민들레, 씨가 맺혀도 민들레,
휘익 바람불어 하늘하늘 날아가도 .....민들레는 민들레
그렇다. 나는 나…..혼자여도 나. 둘이여도 나. 모잘라도 나. 잘나가도 나. 언제나 나는 나.
가우도에서 해를 본 나도 나. 보지 못한 나도 나. 그냥 나는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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